내가 보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회사를 관두고 수입이 줄기에 기존에 갖고 있던 보험을 해지시켰다.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좋다는 학교보험을 할 수 있으니 무직상태인 공백기만 보험 없이 잘 지내면 되겠지 했었었다. 근데 그 기간에 제일 병원 많이 감.ㅇㅇ
그리고 학생보험은 소문대로 너무 좋아 보였다. 다만 임신과 출산에 대한 커버리지가 명확하게 안내되어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 고객이 학생들이니 임신과 출산은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물론 학생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전에 메디캘을 발견해 버렸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기에게 엄청난 서포트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임신확인이 되기 바로 직전 내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기에 나라에서 주는 출산과 관련된 모든 혜택을 신청할 수 있었다. 미국 혜택 빨아먹자고 눈물을 머금고 한국국적 놓아주면서 취득한 시민권인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미국 혜택을 뽑아 먹게 됨. 개이득.
그리고 캘리포니아가 진짜 이민자들에게 좋은 게 엄마의 신분이 시민권자가 아니어도 출산과 아기에 관련해서는 많은 주정부 혜택을 주는 것 같았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캘리포니아 예비 어머니들 찾아보시길 바라요. 주정부는 캘리포냐에서 태어날 아기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덩달아 엄마들도 다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학교 다니겠다고 무직이 되면서 소득이 반토막 났었고, 결혼으로 2인 가족이 되면서 유리해진 것도 있었고, 애도 생겼고 얼렁뚱땅 모든 조건이 베네핏을 받기에 좋았다. 이것저것 찾아봤을 때 mcap인가 하는 프로그램도 출산에 관해서는 엄청난 서포트를 하고 있었다. 부부가 엄청나게 돈을 잘 벌지 않는 이상은 주정부로부터 출산에 관한 지원을 팍팍 받을 수 있고, 타주에 비해 부담이 훨씬 적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엘에이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집이 잘 붙은 것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병원에 좀 일찍 찾아온 편이라고 몇 주 더 기다렸다가 7주쯤 아기 심장소리 듣고 임밍아웃하라고 하셨다. 아기집만 보면 온동네방네 소문낼 각오로 병원 따라왔던 규짱은 다소 시무룩 해졌었다. 나는 7주가 아닌 안정기에 접어든 12주에 임밍아웃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주 규무룩해짐. 어쨌든 아기가 들어선 것을 확인하니 메디캘을 빨리 받아야 했다.
일단 자격요건은 맞는 것 같은데 앞으로 신청이며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또한 막막했었다. 규짱의 형이, 그니까 아주버님이 메디캘에 대해 좀 알 거라고 규짱이 말했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때 이것저것 신청을 많이 해보셨다고. 그래서 우리는 아주버님께 물어보기로 결심하고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당일 바로 식사 약속을 잡았다.
12주 지나서 임밍아웃하기로 했지만 아주버님은 예외로 바로 말씀을 드려야 했었다. 코리안 바비큐 식당을 갔고 식사가 세팅되기 전에 우리가 메디캘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책자를 하나 건네드렸다. 그리고 책자 사이에 병원 가서 찍어온 아기집 초음파 사진을 끼워 넣음. 시큰둥하게 이게 뭔데 하시면서 책자를 넘기시다가 초음파 사진 보고 손으로 입을 가리심. 그러고 우셨다. 대쪽 같은 T집안의 유일한 F. 유일하게 우리 애기 소식에 울어주신 분. ㅋㅋㅋ 우리는 아직까지 아주버님이 울어주신 거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암튼 아주버님은 예상외로 메디캘 신청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진 않았다. 대신에 엄청 적극적이셨다. 소셜오피스 사무실에 가서 신청을 했어야 했는데 그곳까지 같이 시간 맞춰 가주시면서 각종 서류들을 더블체크 해주시고 인터뷰 볼 때 옆에서 말도 맞춰주시고 뭐 놓치는 거 없는지 같이 들어주시고 하셨음.
그리고 다행히 나는 모든 조건에 부합하여 메디캘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규짱은 시민권자가 아니었지만 나와 결혼한 관계로 같이 메디캘 혜택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엄청난 문제가 생겼다. 신청은 모든 게 매끄럽게 되었다. 규짱 또한 2주 안에 모든 보험서류와 카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근데 내 거가 죽어도 안 나옴. 병원은 내가 가야 하는데. 심장소리를 들어야 하는 7주가 되어가는데도 안 나오길래 몇 번을 소셜오피스에 다시 방문을 했다. 그들이 말하길 내가 영주권자 시절에 엘에이에서 메디캘을 신청한 적이 있어서 이름이 LA county에서 Orange county로 넘어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내가 엘에이에서 메디캘을 신청한 적이 없다는 것. 영주권자는 무조건 메디캘이 안 되는 줄 알고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한 적도 절대 없고. 오렌지 카운티 오피스에 여러 번 클레임을 걸었지만 그들은 그냥 전화나 뺑뺑 돌리고 엘에이 카운티 가봐라라는 말만 했었다. 또 엘에이 카운티에 쫓아가면 더 재수 없음. 자기네들은 모른다고 신분증이랑 주소 확인하자마자 내쫓아버림.
7주가 넘어서 아기 심장소리는 들어야겠다고 또 사비 들여서 작은 부인과 클리닉에 갔었다. 초음파로 애가 깡총깡총 뛰는 거 확인하고 건강한 것도 확인했지만, 그 클리닉에서는 더 이상의 산과 진료는 어렵다며 빨리 보험 받아서 다른 산과 병원에 등록하라는 말을 해줬었다. 그리고 전치태반이 보인다면서 큰 병원 가서 꼭 초음파로 다시 확인받으라는 의사 선생님 당부까지 들었다. 잔뜩 쫄아 나왔고 내 메디캘은 임신 10주가 되도록 진행이 아예 없었다. 그냥 다들 난 몰라하고 전화 뺑뺑이만 돌림. 오피스에 찾아가도 직원들이 자기가 메시지 띄워놓겠다, 재촉해 보겠다만 말만 했다. 그나마 손이 빠릿해보디는 소셜오피스 직원을 만나 뒤늦게 원인을 알았는데, 엘에이에서 코비드 백신을 맞을 때 백신 오피스에서 내 이름을 메디캘에 올린 것 같다고 추측을 하더라. 백신 오피스도 접종한 사람들 리스트가 있어야 자기네들이 혜택을 받는다면서 그런 거 같다고. 그래서 내 이름이 나도 모르게 엘에이 전산에 올라가 있던 것이고 이 지랄이 났던 것임. 그전 직원들은 이걸 알아내지도 못했었음.
12주쯤이 되면 아기를 위해 각종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길래 그전에 받고 싶었지만 11주가 되도록 아무것도 없었다. 원인을 말하면서 다시 따지니 주소이전 하는데 6개월이 걸린단 소리를 하고 있더라. 이때부터는 매일 울었던 것 같다. 엉엉 울면서 분노에 속이 타들어가자 오히려 묘수를 하나 생각해 냈다.
Senator에게 메일 쓰기.
예전에 누가 영주권이 딜레이 돼서 세니터에게 하소연 메일 썼더니 진행이 빨라졌더라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말이 되냐 세니터가 뭔데 그런 거를 들어줘,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해봐야 했었다. 영어가 어설플까 봐 한국어로 구구절절 사연을 썼다. 그리고 주소 하나 때문에 임신 진행과정조차 확인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뭐 대충 그런 내용. 챗지비티에게 간절해 보이게 해달라고 번역도 맡겨서 메일을 쏴버렸다. 울면서 보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주말 껴서 5일인가 만에 답이 왔다. 담당 세니터의 꼬붕쯤으로 보이는 직원이 자기들이 오렌지 카운티 소셜 오피스에 연락을 해놨으니, 나보고 그쪽이랑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감동해서 울었음. 미국이 처음으로 나한테 웃어준 기분.
내 영어가 소셜오피스에 지랄하기에 딸리는 것도 있었고, 학교 수업도 시작했으며, 임신 초기 증상이 남아있어 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이유로 전화컨택 같은 것들은 규짱이 핸들하고 있었었다. 내가 학교에서 스튜디오 수업하는 도중에 규짱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메디캘 관련된 일인 걸 알기에 나가서 받으니 규짱 목소리가 되게 밝더라. 오피스 애들 태도가 달라졌다고. 예전에는 it is what it is 태도였다면 지금은 what should I do for you 태도라고. 곧 해결해 줄 기세라고.
ㅅㅂ 권력이 최고구나.
규짱이 전화통화를 두어번 더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이름으로 된 메디캘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아기 심장소리 들을 때쯤부터 보통 병원 등록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13주가 되어서야 병원등록을 할 수가 있었기에 선택지가 너무 좁았다. 크다 괜찮다 하는 병원들은 내 케이스가 좀 늦었다고 거절을 했으니까. 근데 이게 전화위복인 게 St. Joseph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산부인과가 확장되었는지 거기서 유일하게 바로 예약가능하다고 예약을 잡아줬었다. 모든 테스트 결과가 좋았고 전치태반에 대해서는 별 말없이 더 지켜보자고만 했었다. 큰 이슈는 아니겠다 싶었었다.
신축병동이라 진짜 잘되어있더라. 기계들 모두 최신이고,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아서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원래 큰 병원이라 의사 간호사들 모두 탄탄하고. 정말 만족스럽게 출산 직전까지 첵업을 다녔다. 초음파 시설도 엄청 좋아서 남들은 돈 주고 따로 찍는다는 3d 초음파도 우리는 그냥 바로 해주고 했었다. 미국에서 애 낳은 다른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해 주면 엄청 부러워함. 다른 병원은 예약 잡고 가도 두 시간 기다렸다고 하고 시설이 너무 후지던가, 서비스가 너무 별로라던가 다들 불만이 많았는데 세인 조셉 짱임.
임신 중기에 들어서서 전치태반도 좋아졌다면서 운동 권유도 받았고, 진짜 보험 이슈 빼고는 너무나 무탈한 임신 초중기를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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