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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먹기 전에 써두는 비자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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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 J1 인턴의 미국 대사관 인터뷰 호달달 후기 요새는 한국 초딩들도 해외여행 다닌다고 여권에 도장이 가득하지만 나는 J1 준비를 하면서 스물네 살에 처음 여권을 만들었었다. 이민국을 대신해서 나와 회사를 감시하는 스폰서 재단이 있는데 3rd party 같은 곳이다. 나는 CETUSA라는 곳에서 내 케이스를 진행했었고, 당시에는 꽤 신생이라고 소개를 들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곳에서 내가 다닐 회사에 감사 나가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랜덤으로 질문도 했다고 하더라. 스폰서 재단에서 나와 회사 두 쪽 모두 인터뷰도 하고서 오케이를 해주면 미국 비자 인터뷰를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뒤에서 비자 서류들과 취업준비를 돕던 한국 에이젼시에서 비자인터뷰 준비도 도와준다. 이민국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예를 들면 뭐 미국 가서 시민권자 남자하나 ..
겁없이 시작한 J1 이야기 내가 만성 P였었는데 미국 진출을 준비하며 T 성격으로 굳어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천만 원을 벌어 미국에 가겠다 결심했지만, 결심한 이후로는 계산기도 뚜드려보고 날짜도 봐야 하고, 졸업 각도 세워야겠더라. 영어공부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졸업반 1학기에는 일단 학교에 휴학할 거라고 미국 갈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놨다. 누가 말하길 일단 말이라도 저질러 놔야 내가 한 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길래. 그리고 진짜로 쪽팔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산 것 같다.  알바몬, 잡코리아를 뒤져 합법적으로 최대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포지션에 지원을 넣었다. 계산 때려보니까 천만 원 나누기 열두 달 하면 한 달에 84만 원을 꾸준히 저금해야 한다. 더하기 기본 생활비, 그리고 영어학원 ..
철없이 J1 시작한 이야기 대충 십여 년 전쯤인 거 같다. 2012년인가 그랬던 것 같으니까. 전산응용 건축제도 기능사였나 뭐였지 건축 산업기사였었나,전공 자격증 따려고 학원 상담받으러 갔었는데 카운터에 캐나다 취업 홍보 전단지가 빼곡하게 꽂혀있었다.건축 전공자는 캐나다 와서 취업하는데 대충 환영받는다고 오라는 이야기. 그걸 보고 나서부터 해외 연수니 워홀이니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저 그런 학교에 그저 그런 성적이었던 나는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만한 경력이 필요했는데 해외 1년 연수나 경력이면 그럴싸해 보일 거란 생각도 들었고. 근데 문제는 우리 집에서 해외 다녀오렴 하고 지원해 줄 형편은 아니었다. 주말에 알바를 해야만 하는 환경이었음. 알바머신 출신임. 아무턴 나 같은 경우는 돈만 쓰고 오는 해외 어학연수가 아닌, 해외..